그림이야기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무엇인가?

메리지안 2025. 5. 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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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를 감상할때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입니다.

직역하면 '기운(氣)이 살아서 움직인다(生動)'는 의미인데, 단순히 생동감 넘친다는 말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지닌 용어입니다.

이 개념은 동양화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철학이자, 동양예술이 서양과 다르게 발전해 온 이유를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운생동, 어디서 나온 개념일까?

 

기운생동은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이 정리한 회화론 육법((六法 )의 첫번째 항목입니다.
육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운생동(氣韻生動) – 기운과 생동감
  2. 골법용필(骨法用筆) – 뼈대를 만드는 붓의 법도
  3. 응물상형(應物象形) – 사물의 형상을 잘 잡아내는 것
  4. 수류부채(隨類賦彩) – 대상에 따라 색을 맞추는 것
  5. 경영위치(經營位置) – 화면 구도의 조화
  6. 전이모사(傳移摹寫) – 고화를 모방하고 전수하는 것

사혁은 이 중에서도 기운생동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아무리 구도가 잘 짜여있고 필력이 뛰어나도, 그림속에 생동하는 기운이 없으면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죠.

 

 

기운이란 무엇인가?

 

'기운(氣)'은 동양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인간, 자연, 우주 만물은 모두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운의 흐름은 곧 생명과 정신, 그리고 우주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그림에 있어서의 '기'는 화가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순간, 그 사람의 내면과 정신이 붓끝을 통해 화면에 흐르듯 스며드는 것을 말합니다.

기운생동한 그림은 정적인 그림이라도 보는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림 속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예를들어, 나무를 그리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느낌, 계절의 흐름, 생명의 온기까지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이 마치 숨을 쉬듯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운생동의 핵심입니다.

 

 

단순한 '기술'이 아닌 수양의 결과

 

기운생동은 단지 화가의 그림실력이나 묘사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붓의 선 하나, 먹의 농담, 여백의 의미까지도 마음으로 그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옛 화가들은 "그림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의 수련"이라고 했고,

실제로 문인화 에서는 시, 서예, 그림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야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림이 곧 자신의 인격과 수양의 결과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화가의 성품, 기운, 감정이 그대로 그림에 투영되어야 진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죠. 

 

 

기운생동한 작품 예시

 

정선 <금강전도>

 

진경산수화의 대표작가인 정선은 금강산의 실제 모습을 담았지만,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산의 기세와 영기(靈氣)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필선 하나하나가 살아있는듯하며, 전체적인 구도 속에 자연의 생명력과 감정의 울림이 함께 녹아있습니다.

 

 

신윤복<미인도>, 김홍도<씨름>

 

 

인물을 그려낸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에도 기운생동이 담겨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작품의 경우 겉보기엔 정적인 인물화이지만 그 속엔 수많은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단순히 미모를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인물의 분위기와 내면을 화면에 풀어낸 작품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자세, 무심한 듯 내려다보고있는 눈길, 하늘하늘한 옷자락의 흐름, 입꼬리의 미묘한 곡선 등

이 모든 요소들이 기운생동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여인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지만, 그림속엔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일렁입니다.

 

김홍도의 <씨름> 또한 기운생동의 '생동감'이라는 측면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씨름꾼들의 뒤엉킨 팔과 다리, 치몸싸움의 중심축, 긴장과 집중이 흐르는 주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등이

화면 전체에 살아있는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김홍도의 붓선은 유려하고 리듬감있으며, 인물들의 긴박한 동작을 동세(動勢)로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단순히 운동장면을 그린것이아니라 삶의 기운이 응축된 그림입니다.

 


 

 

기운생동은 단지 옛 화가들의 철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운이 살아있는 말, 기운이 흐르는 삶, 기운이 깃든 예슬.

그것이 곧 기운생동이며,

보이지않는 생명력 지닌 모에 담겨있는 동양적 아름다움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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