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달항아리 그림의 의미

메리지안 2025. 6. 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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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그 비움 속의 충만함

 

하얀 달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듯, 단정하고 조용한 곡선 하나로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우리는 그것을 ‘달항아리’라 부른다. 조선 백자의 정수로 불리는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미의식과 철학, 그리고 존재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은 하나의 상징적 형상이다. 오늘날 달항아리는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그림’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도 달항아리를 그리는가? 그 그림 속 달항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백자 달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 달항아리란 무엇인가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 백자 중에서도 유독 크고 둥글며, 하얀 달처럼 생긴 항아리를 일컫는 별칭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조선 백자 대호(白磁大壺)’지만, 근대 이후 감상자들이 그 맑고 환한 곡선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달’에 빗대어 부르기 시작했다.

 

달항아리는 보통 두 개의 반구형 몸체를 위아래로 맞붙여 만든다. 이 때문에 완벽하게 대칭적이지 않고, 살짝 어긋난 형태를 가진다. 그 어긋남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조선 도공들의 철학과 미학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2. 비움의 미학 – 조선적인 아름다움


달항아리는 채우기보다 비우는 미학을 실현한다. 화려한 문양이나 장식은 전혀 없고, 유약의 번짐과 색의 농담, 둥근 곡선의 흐름만으로 완결된 미를 보여준다.

 

이는 ‘여백의 미’로 상징되는 조선의 미의식과 닿아 있다. 그림으로 표현된 달항아리 역시 이러한 미감을 그대로 담는다. 무채색 배경 위에 놓인 달항아리는 주변과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며, 관람자에게 고요함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마치 선비의 방 한가운데 놓인 백자처럼, 그 자체가 풍경이자 마음의 거울이 된다.

 

 

 

 

3. 그림 속 달항아리 – 정물인가 상징인가?


달항아리를 단순한 정물로 그리는 것과, 그것을 ‘상징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현대 화가들이 달항아리를 그리는 방식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 그들은 달항아리를 현실의 항아리가 아니라, 시간, 자연, 존재, 혹은 이상적 세계의 메타포로 사용한다.

 

가령, 항아리를 감싸는 음영은 달빛을 의미하기도 하고, 투명한 여백은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달항아리의 둥근 형상은 여성성, 모성, 순환, 완전함 같은 우주적 상징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4. 달항아리의 풍수지리적 의미


 

1. 원형(圓形)의 기운 – 조화와 화합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완전함의 상징으로, 가정의 평화와 인간관계의 조화를 돕는다고 여겨집니다.

 

2. 백색의 기운 – 청결과 정화
백자는 풍수에서 금(金)의 기운을 상징하며, 공간의 에너지를 맑게 정화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3. 비움의 공간 – 기운의 흐름을 좋게 함
달항아리는 내부가 비어 있어 ‘기(氣)’의 순환이 잘 된다고 봅니다. 풍수에서는 막힘 없는 흐름이 중요하기에, 비어 있는 그릇은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길상(吉祥)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4. 달의 상징 – 여성성, 안정감, 풍요
달항아리는 이름처럼 ‘달’을 닮았으며, 달은 풍수에서 여성적 에너지(陰氣)를 대표합니다. 이는 부드럽고 포용적인 기운을 불러와 가정이나 작업 공간에 안정과 평온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달항아리는 조화, 정화, 순환, 안정이라는 네 가지 핵심 풍수지리적 가치를 지닌 상징물로, 집이나 공간에 두면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들이는 길상적인 예술품으로 해석됩니다.

 

 

 

최영욱 <Karma>

 

 

5. 달항아리를 그리는 이유 – 지금 이 시대에


오늘날 화가들이 달항아리를 그리는 이유는 단지 전통의 재현이 아니다. 그들은 이 상징적 형상을 통해 현대인의 상실된 감각, 고요, 내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되짚고자 한다. 빠르게 변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달항아리는 묵묵히 중심을 잡고 선다.

 

그림 속 달항아리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무언의 울림이 있다. 붓질 하나, 색조 하나에 담긴 절제와 사유의 깊이가 관람자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얼마나 비어 있는가?”

 

 

 

 

6. 달항아리, 한국미의 궁극


달항아리는 단지 조선 백자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미의 정수다. 그것은 겉보다 안을, 채움보다 비움을,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사랑하는 미의식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될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현대의 많은 작가들은 달항아리를 통해 ‘한국적인 것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그림 앞에서, 마음속에 가라앉은 감정이나 기억, 혹은 잃어버린 평온과 다시 마주한다.

 

달항아리는 말없이 묻는다.

그림 속 그릇은 비어 있지만, 당신은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달항아리 그림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선, 하나의 정신적 공간이다. 조선의 미의식, 도가의 철학, 그리고 현대인의 고요한 사유가 하나의 둥근 형태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다시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충만해진다.

 

비워서 더 아름다운 것. 달항아리.

그림 속에 담긴 그 조용한 울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미(美)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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